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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노아 방주의 영적 의미 - 교회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09-02-22 13:17 조회 : 2606

노아 방주의 영적 의미 - 교회

창6:13-22                                          09. 2. 22, 오전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교훈도 있지만 하나님 백성들의 역사와 애환의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의 여러 사건들 중 가장 극적인 것으로는 단연 노아 홍수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이 엄청난 홍수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많은 민족들의 전설 속에서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적어도 33개 이상의 민족들이 노아 홍수 기록과 유사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처럼 당시의 홍수가 전 세계를 뒤덮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의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이 관영하여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온 세상을 멸하실 계획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 그러므로 창세기 6장, 7장, 8장에 자세하게 기록된 방주 사건은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유일한 구원의 길은 그 방주 하나 뿐이었고, 심판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은 그 방주 안에 들어간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로 보아야 합니다. 노아 방주 또한 예수 신앙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방주의 영적 의미를 맛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방주의 의미 15절, (교회의 예표)

방주(테바)는 직사각형의 상자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테바)는 어린 모세를 담아 나일강에 띄웠던 갈대 상자와 성소의 언약궤를 가리킬 때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들 간에 신학적 유사성이 많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방주는 운전되는 배가 아닙니다. 그냥 물 위에 떠 있기 위한 건물입니다. 비록 규모는 거대하지만 운전 시설이 전혀 없는 배입니다. 바깥 바람과 물결, 조류에 따라 떠다니는 단순한 구조물입니다.

이 방주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셨고, 하나님께서 폭우와 험한 물결 속에서 직접 운영하신 배입니다. 온 세상을 뒤덮은 물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험한 항해를 했던 배이면서도, 가장 안전한 항해를 경험했던 배입니다.

그러므로 이 방주는 신약 교회를 상징합니다. 방주가 교회의 예표인 것은 마틴 루터, 박윤선 주석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노아 방주를 통하여 신약교회를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방주와 교회는 그 기원이 동일합니다. 둘 다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고, 주님께서 건축 명령을 주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딤전 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방주와 교회는 그 기능이 동일합니다. 방주가 홍수 심판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였듯이, 교회는 장차 하나님의 불심판으로부터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노아 방주는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만든 배였지만 엄청난 풍랑 속에서도 장구한 시간 동안 거뜬히 견뎌내었습니다. 우리의 교회도 세상의 격랑을 헤치고 나가는 이 시대의 방주가 되도록 우리 모두 우리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껴야 하겠습니다.

 

2. 잣나무로 짓고 역청을 칠함 14절, (예수 보혈 신앙으로 교회가 세워짐)

방주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잣나무로 지어졌습니다. 나무 사이사이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안팎으로 역청을 칠했습니다. ‘역청’(코페르)이란 말은 ‘칠하다’(카파르)란 동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카파르’는 ‘속죄하다’(출 30:10; 신 32:49), ‘사하다’(대하 30:18; 시 78:38)로도 번역됩니다.

따라서 ‘역청을 잣나무 안팎으로 칠한다’는 말은 죄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속죄제물 되시는 예수님의 보혈로 칠해진 교회를 연상케 하는 말입니다. 방주의 재료인 잣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역청으로 칠해진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신앙으로 세워진 교회를 예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주의 운영자가 하나님이시듯이, 교회의 운영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는 인간의 뜻이나 방법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 아닙니다. 오직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으로 운행해 나가야 하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방주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 위에 서 있습니다.

벧전 3:20-21,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배선(선(船) = 배주변에 8식구)

교회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외에 다른 요소들을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헬라 철학이나 인본주의 사상, 세상적인 가치관이나 세속 종교의 그림자라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는 자기 시대의 혼합종교와 더불어 목숨을 건 혈투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방주의 안팎을 역청으로 바르기 위해 몇 달, 몇 년을 수고했을 노아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것처럼, 우리 교회는 예수 보혈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겠습니다.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계 7:14,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사랑하는 교회가 더욱 예수 보혈 신앙으로 확고하게 세워지도록 힘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엄청난 톤 수의 배였음 15절,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의 능력)

규빗은 성인의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인데, 약 45.6cm입니다. 길이 300규빗(136.8m), 넓이 50규빗(22.8m), 높이 30규빗(13.6m)의 직사각형 상자 모양이므로 배수량은 약 32,800톤에 달합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한 때 세계 최대의 위용을 자랑하던 엔터프라이저호가 75,700톤임을 감안한다면, 몇 사람의 가족이 만든 배치고는 상상이 가지 않을 만한 규모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방주는 지상의 모든 동물들을 한 쌍씩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배였다는 것입니다. 방주의 크기를 고려할 때, 12만 5천마리의 양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포유류 3500종, 조류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 5500종을 합치면 17600여종이 되는데, 이들의 암수 한 쌍씩을 수용한다 해도 35,200 마리이므로, 방주의 면적은 계산상으로도 충분한 크기입니다.

 

방주는 신약교회의 예표입니다. 방주가 엄청난 톤수의 배였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인류의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의 능력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롬 10:12-13,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런 약속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속에 깊이 빠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확신하고, 주위의 불신자들을 구원의 방주로 초청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4. 단 하나의 창과 문을 가짐 16절, (‘오직예수’ 신앙)

본문의 창과 문은 단수 명사입니다. ‘창’(窓, 초하르)은 ‘빛’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큰 배에 단 하나의 창문을 위에서 한 규빗에 내었습니다. 채광과 통풍을 위한 창이면서, 깊은 영적 의미를 던져 줍니다.

방주 안의 사람들이 오직 위에 있는 창을 통해 빛을 받듯이, 교회 안의 모든 성도는 위에 계신 하나님의 빛만을 받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신앙을 가리킵니다. 방주의 문은 오직 하나로서, 옆으로 내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이 문을 통해 방주로 들어갔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문은 곧 유일하신 구원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대한 방주이지만 단 하나의 창, 단 하나의 문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오직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함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여러분, 방주의 문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옆으로 나 있습니다. 성막의 출입문도 그 넓이가 성막 폭의 반이나 될 정도로 넓어 출입이 용이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이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구원의 방법을 결코 변경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신앙으로만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홍수 기간 중 노아의 식구들은 방주 안에서 밖의 사정을 전혀 몰랐고, 방주의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오직 위에서 비추이는 빛을 통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교회 안의 성도 역시 세상에 대해 잘 몰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성령의 빛에 의지하여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 신앙으로 때로는 칠흙같은 어둠조차도 안심하고 헤쳐나가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5. 방주 밖의 모습 17절, (교회 밖은 심판)

본절은 강조 용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그리고, 보라, 내가, 심지어 내가, 홍수를 일으키리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물씬 느껴집니다.

‘멸절하다’는 말은 ‘파괴하다’, ‘완전히 부수다’는 뜻인데, 비유적으로는 ‘긍휼을 버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방주 밖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절한 죽음의 현장인데, 이는 교회 밖은 무서운 심판의 장소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방주 안의 노아 8식구보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혹은 선행적으로 더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반드시 최고의 선한 자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세상에는 교회 성도들보다 여러 가지 점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성도들이 가장 문제가 많은 자들인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은 오직 교회 안에만 있습니다. 교회 밖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6. 방주 안의 모습 18-20절, (교회를 통한 구원)

방주 안에는 노아의 8식구가 생명을 보존하는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님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가족공동체로 세우시고 언약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믿음의 복입니다. 언약의 백성들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이처럼 방주 안의 모습은 신약의 성도들이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복을 누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새 언약의 중보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언약의 백성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십니다.

교회의 삶을 통하여 믿음을 키우십시오. 말씀을 마음껏 섭취하여 믿음을 부요케 하십시오. 특히 예배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계속 체험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태산처럼 높아지고 견고해 질 것입니다.

 

7. 노아의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22절, (교회를 섬기는 자세)

이 배는 하나님이 설계 하셨지만, 하나님이 친히 짓지 아니하시고 노아의 손으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그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을 사람들이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를 봉사할 사람은 누구냐 하면, 그 교회로 인해서 구원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만들어주신 이 교회를 우리들의 힘과 재능과 손으로 봉사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봉사는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파출부와 가정주부의 차이를 아십니까? 외모를 보아서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파출부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구분할까요? 두 여자가 똑 같이 밥을 짓고 빨래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합니다. 그러나 한 여자는 단 한 푼도 받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여자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똑같은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시간 맞춰 오고 정해진 시간동안만 일하고, 때가 되면 꼬박 꼬박 돈을 받아갑니다. 그는 파출부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고는 값을 따져 대가를 받아가는 사람이 파출붑니다.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고, 이 교회의 파출부가 누구일까요? 교회를 봉사하고서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출부 밖에 안됩니다. 가정은 교회만큼 신성한 것이고, 교회는 가정만큼 사랑하고 섬길 대상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공부한다면 교회를 위해서도 공부해야하고, 가정을 위해서 돈을 벌면 교회를 위해서도 돈 벌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면, 자기 가정과 교회를 똑같이 알고 자기 몫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내 영혼의 가정이며, 내 영혼이 구원과 복을 받는 기관이기에,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지출이며, 교회를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드려 봉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구원받을 배를 구원받을 사람에게 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 큰 배를 짓기 위해서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다 털어서 자재를 구하고 인부를 구하고 기술자를 사서 그 배를 지었습니다. 그 배를 지으며 일해주고 돈 받아간 사람들은 다 망했지만 하나님이 명하신 배를 짓기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다 드린 노아의 가족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지혜와 재산을 다 쏟아 교회를 섬길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들이 그동안 한 것은 방주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 바라보며 순종하며 감사한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서 방주인 교회에 들어와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새 땅에 내릴 때까지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큰일, 큰 봉사 못하고 큰 공로 못 세워도 상관이 없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 안에서 무슨 공로를 세웠습니까? 그저 찬송했을 뿐입니다. 은혜의 방주안에 들어온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교회에 들어온 것이 은혜인줄 알면서 감사합시다. 세광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신 방주입니다. 교회를 참으로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힘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살아갑시다.

방주 안에 생명이 있듯이, 교회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를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교회를 흠집내는 그 어떤 말이나 행동도 단호히 거부합시다.

찬송가 208장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곡이어야 합니다.

1.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2.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3.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 홍수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노아 방주의 깊은 영적의미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오묘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전적인 관심은 방주를 통해 나타내신 주님의 교회, 그리고 이 교회를 구성하는 ‘오직 예수’ 신앙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방주 건설 사역에 부르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노아가 가졌던 ‘살아있는 역동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절).

오랜 세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고(忍苦)의 100년이었습니다. 노아는 조롱과 비웃음의 하루하루를 묵묵히 실천하는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무서운 홍수 심판을 준비하던 노아는 ‘역동적인 신앙인’의 사표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방주를 건설해 나가는 사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장차 주님이 주실 위로와 상급을 바라보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믿음과 인내로 최후 심판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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