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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칠병이어(777) 기적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9-11-25 09:18 조회 : 133

칠병이어(777) 기적


가복음 8:1-10                                                                                      19. 11. 24, 오전


오병이어의 기적보다는 다소 덜 알려져 있지만 칠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두 개의 기적을 비교해 보면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이 발견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1) 어떤 종류의 빵인지, (2) 몇 개의 떡인지, (3) 몇 마리의 물고기인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반면, 칠병이어의 기적은 “일곱 개의 떡과 몇 생선 두어 마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먹고 남은 광주리의 개수도 의미심장합니다. 몇 개의 광주리가 남았나요? 일곱 광주리입니다. 일곱 개의 떡이 수천 명을 배부르게 한 후에 일곱 개의 광주리로 남아 돌아온 것입니다. 일곱 개의 떡과 일곱 개의 광주리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연결 고리가 형성됩니다. 혹시… 일곱 개의 떡과 일곱 개의 광주리 사이에 계신 완전하신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럴 경우 모인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일곱 개의 떡이 완전하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손을 통해 일곱 개의 광주리에 담기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七이 완전한 七을 거쳐 풍성한 七로 거듭난 것입니다! 결국 풍성한 七은 지금 당장 굶주린 영혼들의 배를 채우시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당신을 만나게 될 수많은 영혼들의 배까지도 채우실 수 있는 온전히 풍성하신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렇게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칠병이어의 기적은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을 담고 있는 요한복음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시도한 연결이 매끄럽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상력까지 발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논리학에서 말하는 “숨은 전제”를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보고, 완성된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후대 독자들을 고려할 경우 어느 정도 끼워 맞춰집니다.


미국에 잭 밀러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가 믿고 사랑하는 주님을 전하고 싶었지만 워낙 배운 것도 없고 말재주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서 남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나서지 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밀러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전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수줍은 농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한 가지 생각해 냈습니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1년에 두 번 정도 야생 거위 떼가 날아왔습니다. 그는 이것을 그물로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잡은 거위의 발목에 쪽지를 매어 날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성경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쪽지를 매달아 준 거위는 1년에 약 200마리나 되었답니다. 이 쪽지를 매단 거위는 겨울이면 남아메리카까지, 여름이면 알래스카까지 날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밀러의 중심과 열심을 인정하셨습니다. 그가 사는 곳에서 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거위가 날아가는 곳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이 쪽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책상에는 이들이 보낸 감사의 편지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 농부의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열심이 이 농부의 열심보다 더 간절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이 더욱 뜨겁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 중의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 전체에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과 같은 칠병이어의 기적은 마 15:32-38솨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복음이 어떻게 증거되었으며 이방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만났는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그런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마가는 본문 3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기적사건의 증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 중엔 호수 건너편 두로와 시돈 너머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갈릴리를 지나다 호기심으로 군중 속에 묻혀 있던 이방인 여행객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7이라는 숫자가 전체, 완전, 보편성을 의미하는 숫자인데 본문의 떡 일곱덩이나 남은 일곱 광주리는 이방인을 상징한다고도 말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12제자 중심이었다면 이교 문화권인 지중해의 초대 교회에는 일곱 집사가 있었습니다. 12광주리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졌고 본문의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들을 향한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자연법칙이나 과학적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본문은 단순히 기적을 소개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이런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 본문은 한 기적 사건을 통해 이방인을 위한 구원사역과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서 온 가장 큰 표적이며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주리고 목마름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요 6:35) 예수님에게 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습니다.


세상의 떡과 물은 다시 주리고 목마르게 하지만 예수님의 샘은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왕 주려면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시시한 세상 것 말고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신 주님을 선물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떡을 떼어 제자들로 하여금 나눠주게 하신 것은 복음을 증거하라는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나눠주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에게 책임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주리고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이 전도자의 사명입니다. 예수께로 이끌어 예수의 샘물에서 생명수를 마시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으로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학식, 경험, 전도의 스킬 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얻은 양은 진짜 양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주님을 보여주고, 만나게 해주고, 그 앞에 거꾸러지게 하는 것이 진짜 전도입니다.


요즈음 얼마나 주님없는 교회성장론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 단 한번도 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교회에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세상적 방법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마켓팅입니다. 장사입니다. 단 한 생명이라도 예수님 앞에 전인적으로 완전히 굴복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초신자들은 영적인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 22:6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을 통하여 제대로 전도받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크리스찬 될 줄로 믿습니다!

회에도 반짝 신자, 반짝 전도자가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른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도 또다시 표적을 요구합니다. “네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기서 내려오라!”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을 보아야 했지만 정작 자기들을 구원하려 오신 예수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마약에, 감각적 욕구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은 이런 신자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기독교에는 분명히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크리스챤이 기적에 매어 있으면 안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능력과 권세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어납니다. 사람이 그것에 집착하고 자기 능력으로 그것을 일으키려 할 때 이단이 되고, 문제가 생깁니다.


본문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예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명의 헌신자가 드린 한끼 도시락이 4000명 이상,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10000명도 족히 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일곱 광주리나 남게 된 기적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는 이 광야의 기적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바로 그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일러줍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 혼자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업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여러분이 땅에서 풀면 하나님도 하늘에서 푸십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과 동업하려면 나도 뭔가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릴 많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가지고 온 것으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보잘 것 없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어여삐 여기셔서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주라고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주님께 가져오기에 부끄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모습 그대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 건강, 물질, 시간, 열심을 드리십시오. 비록 하나님이 주신 것 다 잃고 지금 남은 것은 떡 몇조각 뿐이라 해도 그대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받으십니다. 주님이 축복하십니다.


이 시간 헌신의 찬송을 두 손 높이 들고 하나님께 드립시다. 214장입니다.

1)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2)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3)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4)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아멘.

중심으로 헌신하며 결단하는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이란 무엇입니까? 의도, 목적, 태도란 뜻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여러분이 과연 동업할 만한 그릇인지 중심을 보셨다는 말입니다. 아이처럼 순전한 믿음, 계산하지 않는 태도, 주님만을 향한 중심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본문의 예수님도 감격하셨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한 무명의 사람이 드린 순전하고 때묻지 않은 헌신이 예수님의 손을 들게 했습니다. 축복의 손을 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자기도 배가 고팠지만 주님이 원하실 때 드린 헌신, 볼품없지만 예수께 가지고 온 제자들의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라고 하셨습니다.


기적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일어납니다. 본문 2절-3절에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어쩌면 이렇게 자상하시고, 형편과 처지를 알고 있습니까?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무리의 상태를 아시고,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날을 염려하시고 형편을 굽어보시는 지극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의 처지와 형편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의 처지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전도를 하고 싶어도 말주변도 없고, 용기도 없고, 수줍어 주님께 매달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앞에서 머리 꼿꼿이 세우지 않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무릎 꿇을 때, 얍복강 가의 야곱처럼 주님 허리춤 붙들고 죽기살기로 매달릴 때 주님이 우리 손을 들어주십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풍성히 열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누구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지 않고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는 죽음의 땅에서 건져 생명의 하늘로 옮기운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주님은 우리의 삶과 죄와 고난을 친히 체휼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아십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것이 기적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려 독생자를 죽이신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기적입니다. 전도자가 된 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진짜 전도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나눌 천국잔치를 보게 됩니다.

“무슨 얘기냐? 떡먹고 배부르게 됐다는 게 무슨 천국잔치의 모형이냐? 예수님은 천국은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그렇습니다. 천국은 분명히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풍요하다고 천국이라면 이 땅에는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지식의 성취, 권력의 장악 등이 결코 천국이 아님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대의 부를 누리고 있는 그들의 재산이 오히려 그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돈이 천국을 만들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쫓다가 부끄러움을 당했습니까?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천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기적을 말하려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지만 나누고 드릴 때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는 기쁨과 나눔과 섬김의 잔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벳세다 평야에 공평하고 만족한 분배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주권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군중의 근심과 소란을 잠재웠습니다. 평강이 임했습니다. 온 무리에게 주님께서 베푸신 축복의 만찬이 제공되었습니다. 이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이 솟았습니다. 천국이 이뤄진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헌신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 냈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 할 때, 아낌없이 바친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4000명 이상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육체에는 만족을, 정신에는 기쁨을, 영혼에는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은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밀알되어 세상에 심겨졌습니다. 그 땅에서 죽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아무 보잘 것(이사야 묘사) 없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그 생명이 온 세상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아담 하나가 불순종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예수님 한 분이 순종하고 희생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칠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밀알이 되어 세상에서 죽을 각오를 합시다. 우리가 세상에서 죽으면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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