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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10 항쟁 33주년에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20-06-10 09:20 조회 : 21

칼럼/ 이상호 목사(1346)                               


6.10 항쟁 33주년에


6월 10일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날이다. 1926. 6. 10은 학생들의 <6·10만세운동>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3.1만세 운동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독립투쟁의 하나이다.


1987. 6. 10은‘군부독재 타도, 민주주의 만세!’의 일명 <6월항쟁>의 날이다. 때는 박정희 군사정권 18년에 이어서 전두환 정권이 독재의 극을 달리던 중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살인은폐 축소조작사건이 일어났다. 뜻있는 사람들은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고 특히 6월 10일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범국민대회가 전국에서 치러졌다. 정권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구속수감하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민주화 투쟁은 가열차게 심화되어 갔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 공주에서도 6.26 오후 6시에는 경천교회 신두수 목사를 비롯하여 고종혁, 김기황, 김태신, 류태석, 박용규, 박춘삼, 변종섭, 석승기, 윤재천, 이상호, 조병권목사와 100여명의 학생 청년들이 공주시장 입구 중앙약국 앞에서부터 박물관 4거리까지 평화행진을 하였다. 고종혁 석승기 목사는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와 석목사 외에 노동자 학생 등 7명이 연행되는 과정에서 석목사는 6바늘이나 꿰메는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다시 7시에는 시장 - 전신전화국 앞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공주사대 3학년 황우숙 외 4명이 추가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도 산발적인 시위를 하다가 밤 10:40경에야 종료하고 반죽동 세광교회에서 34명이 모여 평가회와 연행자 석방을 위한 농성에 들어가서 새벽 1시 30분 전원석방, 농성을 해제하는 일이 있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6월 10일로 예정된 국민대회에 출정하기 위해 연세인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공식 주도한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국민운동본부는 산발적 시위투쟁을 다시 결집시키기 위해 6월 18일을‘최루탄 추방의 날’로 선포하고 최루탄 추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날 전국 16개 도시 247곳에서 일제히 시작된 이 대회에는 150여만 명의 민중이 참여하였다. 이날 부산 지역 시위에서 이태춘은 경찰의 다연발 최루탄 난사 직후 얼굴 전체에 최루탄을 뒤집어 쓴 채 고가도로에서 떨어져 숨졌다.


6월 24일 전두환과 김영삼의 여야 영수회담이 결렬되자, 6월 26일 국민운동본부는‘국민평화대행진’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 날의 평화대행진은 사실상 유월항쟁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130여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경찰은 전국적으로 10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했으나 효과적인 진압작전을 벌이지 못하였다. 전국적으로 경찰서 2개소, 파출소 29개소, 민정당 지구당사 4개소 등이 파괴 또는 방화되었으며 3,467명이 연행되었다. 이 날의 평화대행진은 당시 민주화투쟁의 열기를 한군데로 집약시킨 결과물이었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6·29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유월항쟁은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 점증된 민주화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제5공화국의 실질적 종말을 가져왔다. 동년 9. 26일에는 우리 세광교회에서 고 박형규 목사님을 모시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공주지부 창립대회를 가지던 중 최루탄사건이 발생하여 오랫동안 투쟁하기도 하였다. 당시 필자는 공주지부 공동대표이자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우리 대한민국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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