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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성지순례 - 요르단(2) 이스라엘(3)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9-03-29 09:00 조회 : 68

양지코너(1267)/이상호 목사                            


성지순례 - 요르단(2) 이스라엘(3)


2월 28일 새벽에 일어나니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오늘도 5시 기상, 6시 식사, 6:50 출발이다. 일정에 없는 헤스본성 - 우리야 장군의 격전지 모압 암몬성에 올랐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가이드 최현진 목사는 한 군데라도 더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암몬성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마치 굵은 빗줄기가 충신 우리야의 통곡과 눈물로 여겨졌다. 이번에는 알렌비 국경을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이스라엘에 입국했다.


싯딤골짜기를 거쳐서 종려나무(히, '타마르' 영어 'Date Palm')라고도 하고 대추야자라고도 해서 우리나라 대추 같은 열매를 맺는 나무농장들을 지나 사해가 바라보이는 곳에 사해사본 발견지 쿰란공동체를 찾았다. 에세네파에 관해서는, 쿰란의 발견 이전부터 필로와 요세푸스와 히폴리투스와 플리니와 디오 크리소스톰 등으로부터 일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47년에 사해 사본이 발견되고, 쿰란 공동체의 거주지가 발굴되면서 이들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쿰란의 유대 종파, 곧 에세네파가 거주했던 곳이다.


1947년 베두인 목동에 의해 사해 사본이 발견된 동굴 인근에 일종의 수도원 비슷한 그들의 거주지가 발굴되었다. 이는 기원전 2세기 중엽 예루살렘에서 박해받아 쫓겨난 이들이 선택한 일종의 도피처였는데, 이는 자신들의 종말론적 이상에 가장 어울리는 광야였다. 이 곳에서는 공동체에 속한 일원들이 공동으로 식사하는 식당과 양피지에 글을 써 텍스트를 만드는 필사실(筆寫室), 여러 개의 물 저장소와 수로, 창고, 작업장, 그리고 근처의 무덤 등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31년 지진으로 일차 멸망했다가 거주가 다시 시작되었고, 68년 로마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등잔이 발견되었는데 자기를 볼 수 있는 작은 빛이 곧 등잔이고 이들이 곧 빛의 자녀였다.


이번에는 사해를 끼고 달리다가 메츄게이 드라곳이라는 해발 900m나 되는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 사해를 조망했다. 일반 여행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인데 가이드 최목사가 특별히 넣은 코스이다. 오던 비가 멈추고 절벽 아래로 펼쳐진 사해는 장관이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진 두어장 찍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금방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아름다운 광경은 대가를 치러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싯딤골짜기를 지나 여리고로 들어가 시크모라고 하는 돌무화과나무(우리 성경엔 뽕나무)를 보았다. 수령 6-700년 된 나무였으니 예수님 당시 삭개오가 오른 나무는 아니었지만 잠시 내려서 사진찍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이번에도 현지식이었다. 이제는 조금 물린다. 첫날부터 계속해서 현지식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려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고 뷔페식이었다. 식당 바로 옆에는 여리고성이 있었다. 성이 이중벽으로 되어 있는데 평시엔 막아서 집으로 사용하다가 전시에는 성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식후에는 예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시험을 받으셨다는 시험산(마태 4:1-7)을 조망한 후 처음으로 비누, 대추야자 등 마트체험을 하였다. 예루살렘보다는 가격이 싸다고 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가보다. 이동 중 각각 다른 무지개를 네 번이나 보았다. 따라서 해도 보고 비도 만났다. 에브라임산지, 유다산지를 지난 족장의 길을 따라 세겜(어깨, 신 7장)지역 그리심산(해발 880m)에서 에발산(940m)을 바라보며 수가성 여인의 기념교회와 야곱의 우물, 디나 사건이 있었던 세겜성을 조망하였다. 이번에도 사진 한 두장 찍고는 바로 큰 비를 만났다. 이번에는 우박을 동반하여 비바람이 세차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예배처로 성막이 있었던 실로를 찾았다.여기 ‘실로’(שִׁילֹה)는 ‘샬라’(שָׁלָה)에서 유래하여 ‘안식을 주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평화의 성읍’이라는 의미의 ‘예루살렘’(יְרוּשָׁלַיִם)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루살렘 북쪽 약 32㎞ 지점, 벧엘 동북쪽 18㎞ 지점에 위치한 에브라임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 직후 성막을 두었던 곳으로 사사 시대 말기 엘리 대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였다(삼상 4:3). 또 동족상잔의 참변 이후 장가들지 못한 베냐민 사람들이 동족들의 묵인하에 처녀 400인을 약탈하여 아내로 삼은 곳이다(삿 21:15-24). 엘리 대제사장과 사무엘의 거주지이고(삼상 3장), 선지자 아히야의 고향이기도 하다(왕상 14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 만큼 성막박물관, 예배처, 기념관, 각종 집터, 물저장소 등 유물이 엄청나다. 출애굽 이후 길갈까지 계속해서 이동했던 성막은 실로에 도착해 한 자리에서 298년간 머물렀다. 그러니까 실로는 1년 3차레 12지파가 모였던 곳으로 이스라엘의 첫 수도라고 할 수 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억수로 오는데도 불구하고 손자들도 답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 모처럼 화려한 호텔에 들었다. 식사도 훌륭했다. 잘 먹지 않는 소고기 스테이크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잘 먹고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예루살렘 야간투어를 한다고 한다.


문제는 날씨가 문제다. 겨울옷 준비를 하지 않아서 몹시 추웠다. 우리 내외는 포기선언을 했다. 그런데 손자와 손녀가 나간다고 나선다. 만류를 했지만 다녀와서는 트램기차도 타고, 양고기꼬치도 먹었다며 대만족이다. 동료목사들 힘들게 했을까봐 걱정했는데 다들 잘 다녀왔다고 한다. 젊음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동이는 왜 벌써 여행이 끝났느냐고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모처럼 마음 편히, 그러나 이제 곧 귀로에 오를 생각으로 몸을 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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