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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청주기독교역사 순례(상)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3-11-16 09:02 조회 : 2124

양지코너(1005)/ 이상호 목사


청주기독교역사 순례(상)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갖다보니까 청주에 여러 번 다녀왔다. 사진도 많이 담아왔다. 그런데 정작 글을 쓰지 않았다. 지난 주 총회 역사위원회(위원장 이상호)에서 다시 청주를 찾았다.


먼저 순교의 터 위에 세워진
청주제일교회이다. 제일교회는 본 교단 총회가 지정한 제6호 역사유적교회이다. 담임 이건희 목사와 직원들이 반갑게 일행을 맞는다. 당회장실에는 근사한 다과상이 차려져 있고 역사자료까지 준비하여 나누어준 후 친절하게 소개한다.


1904년 청주도성 남문 밖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청주제일교회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와 함께 고난을 함께하며 역사의 변혁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동시에 충북, 대전까지 복음 선교의 주역으로 충북기독교사에 모교회이자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함태영, 구연직, 강신정, 유병찬, 이쾌재 등 다섯 분의 총회장을 모신 교회로도 유명하다.


특히 현재 청주제일교회가 서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 청주 영장의 관사와 옥사가 있던 곳으로 1800년 신유박해 이래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옥에 갇혔다가 처형된 천주교의 순교지이다. 바로 그 순교자들의 피와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리고 기독교와 지방문화유산이 많은 교회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앙공원으로 이건되었지만 고려시대 누각 '망선루'가 있어서 교회학교, 세광학교가 시작된 곳이며, 일제강점기에 여성들이 세운 최초 한글비석 '로간 기념비'를 비롯해서 87년 6월 민주항쟁역사의 자리이자 충북지역 기독청년,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었다는 기념비도 서 있다. 100주년기념비까지 어떤 교인은 절도 아닌데 웬 비가 이렇게 많으냐는 분도 있다고 한다.


모쪼록 청주제일교회는 1939년 서양식 벽돌건물로 지어진 유서깊은 예배당에는 6.25의 상흔이 남아있으며 1950년 정초석 등 두 개의 준공 정초석이 있는 교회이다. 2001년에는 충북선교의 대부이자 교회 창립자인 민노아 목사를 기념하여 웅장한 교육관을 지었다.


더욱이 제일교회는 교육을 중시하여 학교를 많이 세웠다. 상당유치원, 청신고등공민학교, 야학, 남녀성경학원, 광남학교(현, 청남초등학교)를 비롯해서 청신여학교, 세광중고등학교 등을 세우는 등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끝으로 중앙공원에 있는 망선루도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충북 최초의 교회
신대교회를 찾았다.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 (당시에는 청주군 강서면 신대리)426이다. 담임 강신수 목사와 사모가 반갑게 맞아준다. 신대리에 살던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은 농한기에 서울을 오가며 행상을 하던 중, 경기 죽산의 ‘둠벙리교회’(현, 경기남 용인시찰 백봉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자발적으로 예수를 믿기로 하였다. 이들은 마을로 돌아와 주막을 빌려 흰 광목에 십자가와 태극기를 그려 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 때가 1900년 10월 3일, 충북 최초의 교회인 신대교회의 시작으로 본다. 성경지식이 없어 막걸리도 마시며 유래 없는 주막교회가 시작되었다.


미국 북 장로교 밀러(한국명 민노아) 선교사는 1890년 후반부터 경기 남부 지역 선교를 담당해 순회 전도활동을 하였다. 1900년대 어느날 청주 장터에 들렀다가 신대교회 소식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후 이찬규 조사를 파견해 예배를 인도하고 교인들을 지도하게 했다.


처음에는 주막교회에 사람들이 모이자 술손님이라고 반기던 주막 주인은 서울에서 온 밀러 선교사가 설교를 하며 “술 먹으면 집안 망하고 죽어서 지옥간다.”라고 하자 화가 나서 빗자루를 휘두르며 쫓아냈다고 한다. 이찬규 조사는 주막교회를 철수하고 1901년 오천보의 집을 다시 예배처소로 삼았고, 이후 교인들의 헌금으로 오천보의 집 옆에 있는 초가삼간을 구입해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1905년 11월에는 창립에 기여한 오천보씨를 신대교회 제1대 장로로 장립했다. 한편 민노아 선교사는 오천보 장로의 부인 이춘성의 신앙을 보고 1910년 평양신학교에 추천했다. 학업을 마친 이춘성은 충청 지역의 전도에 주력했는데 특히 신유의 은사로 정신병 환자를 고쳐서 많은 결신자가 생겨났다. 초기 선교사들이 보고서에서 자주 언급됐었다.


1945년 10월 3일 해방 직후 장로 장립을 받은 오을석 장로는 해방 후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서도 교회를 지켰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교회 자료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당회록도 1970년대 이후 기록만 있고, 교회와 오천보 장로의 집터만이 100여년 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예배당 앞에 두 개의
오을석 장로 추념비이춘성 전도부인 공덕비가 서 있다. 현재는 터가 좁아 옹색한데 인근에 수백평의 땅을 사서 건축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교회 뒤 편에는 1985년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사업회 충북협의회와 충북도지사가 세운 기독교전래기념비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예장 동산교회 앞에 있는
선교사 양관을 찾았다. 성서신학원장 정동범 목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역사를 전공하여 열정으로 양관을 소개한다.


미국 북장로교는 1904년 청주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청주 및 근교지역에서 선교 및 의료, 교육활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하였다. 청주탑동의
양관은 이때 소속 선교사 밀러 목사(민노아)가 선교사들의 거주와 활동을 위해 서양식 기법으로 건축한 건물이다. 주택, 병원 등 총 여섯 동의 건물이 있는데 서양식 건물이라는 의미로 양관洋館이라고 불린다. 1906년 선교사 주택(현 포사이드관)을 시작으로 하여 1912년까지 네 동의 선교사 주택과 소민병원(현 던컨 기념관)을 건립하고 1932년을 끝으로 성경학교(현 부례선 기념관)를 세웠다. 이곳에는 정부의 지원으로 원형에 가깝게 리모델링하여 청주 성서신학원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나머지는 일신학교 내에 있는데 낡은 상태로 체력단련실과 교육복지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타깝게 한 동은 개인에게 넘어갔다.


청주 탑동 양관은 근대초기 서양식 종교와 선교사의 유입과 함께 도입된 서양건축양식이 전통건축 양식에 수용되어 절충양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차례로 건축된 대표적 근대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규모로 한식 기와를 사용한 한옥의 지붕형식과 서구의 지붕형식이 혼합된 절충식 지붕형태를 띠고 있다. 지난 198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충북 유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일신학교는 신축예정중이며 네 동의 양관이 잘 보존되어 역사박물관, 교육박물관 등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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