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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11. 22(월) 조선학교와 오오미조교회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0-11-23 07:54 조회 : 732

11. 22(월) 조선학교와 오미조교회


조선(朝鮮)학교 견학


좋은 날이 밝아왔다. 비가 내린다. 그간 날씨가 좋았는데 색다른 날이다. 이곳 오츠시(大津市)는 한문 그대로 큰 나루가 있는 곳이다. 정말로 바다같이 넓은 호수를 중심으로 시가 형성되어 있고 다니면서 보니까 큰 배들도 많이 보였다. 물안개 자욱한 넓은 호수가... 어떤가? 퍽 낭만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보리스>라고 하는 이름있는 건축선교사가 지은 80년이나 된 오래된 건물에서 잠을 자고 났으니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고 남지 않겠는가?


오늘은 조선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조선학교라 하면 남북이 갈라지기 전의 조선을 말하며 현재는 북한에 더 가까운 학교이다. 차로 40분 정도 달려가니 학교가 나오고 오오야마 목사도 도착한다.


북한에 가까운 학교를 방문한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학교명을 보니까 '시가조선초중급학교'이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교장실로 안내 되었다. 웃음으로 맞는 정상근 선생(52)은 재일교포 2세다.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인데 북한에서 이 학교를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북한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실토한다. 현재 일본에 재일교포는 약 20만 정도가 살고 있으며 이곳 시가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조선학교가 있다고 자랑한다. 조선인의 정체성과 재일교포들에게 마음의 고향같은 학교라는 얘기다.


1950년을 전후로 조선학교들이 세워지려고 했으나 정부의 방해와 어려움으로 학교가 폐쇄되었다가 1960년에 재개되어 금년에 개교 50돌을 맞았다. 원래는 초중급학교였는데 중학교는 휴교되고 유치, 초등학교 재학생이 40명이다. 그간 775명의 학생들을 배출했다. 65년 한일국교정상화로 한반도에서 일본이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이므로 조선학교는 일본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도 어려운 공화국에서 매년 도아주니 고맙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국은 하나이고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한다.


아직도 이곳에는 엄연히 차별이 존재하며, 강제징용, 강제합병의 역사적인 근대사의 문제와 정치, 사회, 군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지원을 받으니 정보 역시 북한의 영향을 받고 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제 직접 학교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유치부 아이들이 마침 음악시간인데 우리를 환영하는 노래를 불러준다. 귀엽고 깜찍한 모습은 어린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다. 한글과 일본어, 산수를 배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속담풀이 학과에서는 겸손한 사람을 나타내는 속담으로 "벼이삭은 잘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칠판에 써있다. 장구, 북, 괭과리, 상고 등 전통악기도 보인다. 넓은 강당과 각종 교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다시 교장실로 내려와 담소하였다. 미묘한 정치문제 같은 것은 지혜롭게 피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에 개인적인 생각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교토교구와는 최근에 재일외국인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교회와 사회위원회 주최 강연회에 정교장을 강사로 부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나와서보니 오오야마 목사가 시무하는 제제교회와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비가 오고 월요일이라 박물관 등 많은 곳이 문이 닫혀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오목사는 자기 집에 가서 오후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하자고 제안한다. 그렇잖아도 일본 교회 목사관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잘 됐다.


조그마한 사택에는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책과 살림살이, 각종 물건들로 초만원이다. 늘 정리하지 못한다고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는 나를 웃게 만든다. 늘어놓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깔끔하게 정리를 해야 일이 되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려면 메모지, 여기저기서 받은 자료들, 여행자료 등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더구나 교회와 유치원, 교구와 교류위원으로 몇 개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오목사야 훨씬 더 많이 늘어놓고 살아야 하리라.


만게츠지(滿月寺)와 신사


시간이 있어서 카타타교회에서 가까운 호숫가에 있는 절을 찾았다. 소나무와 경치가 아름답다고 인도한다. 절은 작은데 천년고찰이다. 소나무가 장난이 아니다. 수령이 600년 정도되었다고 한다.


특히 호수에 지어진 우끼미도우(浮御堂)는 아름다운 팔경 중 하나라고 한다. 마치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숫가에 오래된 고찰과 어울어진 소나무가 일품이다. 부슬비 내리는 날, 우끼미도우를 한바퀴 돌면서 보는 호수와 마치 바다갈매기 같은 새들을 바라보며 잠시 쉼을 얻었다.


이번 일본기행에 보너스가 있었다. 교회가 작아 담임목사를 모시지 못하기에 프로그램에 넣지 않았는데 오래된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교회(오오미조교회)가 있다기에 차로 40분 거리를 안내받았다. 오오야마 목사의 친절과 집요한 양지의 생각이 가능케 한 일이다.


그런데 호수를 따라 가는 길과 왼쪽으로 보이는 단풍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는 것은 보너스이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신사와 교회당을 많이 찍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더니 정말로 신사가 많은 곳으로 안내한다. 오오미조교회를 가는 길 호숫가에 한 신사가 나왔다.


차를 세우고 신사와 시설물들을 계속 사진에 담았다. 일본에는 왜 이렇게 신사가 많으냐? 우리 한국, 특히 기독교에서는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순교까지 하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데..... 일본엔 무려 800만이 넘는 신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든, 나무든, 바위나간에 뭐든지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는 신을 모신 곳으로 일본인들이 복을 비는 곳이라고 한다. 다만 어저께 타니무라 목사가 말한 것처럼 명치시대 일본 천왕을 모시게 되면서 국가신사가 되어 순수 민간신앙에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오오미조교회


신사에서 조금 더 가니 시골 마을이 나온다. 절을 지나자 마을 주택 가운데 아주 작은 교회당이 나온다. 돌기둥에 철문이 이채롭다. 더욱 반가운 것은 빈 교회 문 닫힌 교회를 찾아갈 각오였는데 불이 환히 켜진 예배당에 웬 올겐소리가 아름답다.


교역자가 없는 교회에 현역에서 은퇴한 아사미 목사(73)가 설교목사로 봉사하고 있는데 그 사모님(70)이 올겐연주를 하고 계셨다. 목사님과 목사의 딸이었다는 사모님의 모습은 영락없이 오누이를 넘어 쌍둥이 같이 닮으셨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보면 닮는다는데 그래서일까? 아니면 평생을 신앙으로 교회를 섬겨 오신 두분의 고운 심성과 타고난 아름다움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방금 연주한 올겐은 보통 물건이 아니다. 무려 100년이 넘은 것으로 얼마 전에 지역 신문에 날 정도로 유명한 올겐이다. 오래된 올겐으로 연주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 많으신 은퇴 사모님이 연주를 하시니 음악을 좋아하는 양지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더구나 예배당 안에는 수십 명의 사진이 걸려있고 백합이 꽂혀있다. 알고 보니 내일 성도의 날로 영면자(永眠者) 기념예배가 있어서 준비하느라 나오셨다고 한다. 일본교회에서 배운 것은 소천자기념일이다. 1년에 봄, 가을, 한번, 큰 교회는 매월 그간 돌아가신 분들을 함께 추모하는 날이다.


이곳은 아사미 목사의 고향으로 귀소본능의 욕구대로 은퇴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와 사시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영면자의 날에 추모할 아사미 목사님의 할아버지, 아버지 내외분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우리는 노 목사님 내외분을 심방한 기분이다. 기도를 청하셔서 오오야마 목사가 일본어와 한국말로 기도를 드렸다. 이어서 두 분을 모시고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부모님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다시 40여분 차를 타고 카타타교회로 돌아와서 오목사는 집으로 가고 다케우치 목사의 도움으로 온천을 하게 되었다. 이틀이나 묵는 예배당 2층 숙소에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비는 여전히 오고 있고, 해 짧은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좋은 곳으로 모신다고 한참이나 달려 온천장으로 안내한다. 신발을 넣고 문을 잠그고 입욕권을 사고, 타월과 필요한 도구들을 사거나 빌려서 입장을 하려니 복잡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돈이다. 제법 큰 타월은 돈을 주고 빌리는 모양이다. 나올 때 반납을 하였다.


목욕시설은 우리 한국을 따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새롭게, 뭐든지 버리고 새로 나온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일본은 버리지를 못하는가보다. 그리고 우선 건물이 오래되어 우중충하다. 비가 내리는 노천탕도 즐기고 이곳저곳 들러본다. 여자 종업원들이 남자들 다 벗고 목욕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드나드는 모습은 색다르다.


깨끗이 몸을 닦고 조그만 동네 식당에서 일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역시 고구마 튀김이 맛이 있다. 모처럼 아는 집에 마실 온 것처럼 옛날 사진을 보고 나누면서 여유로운 밤을 맞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막걸리까지 준비한 모양인데 잘 먹지를 못하니 되레 미안하다.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더듬거리면서도 잘 해내는 최목사 덕분에 정담을 나누다 보니 10시가 넘는다. 헐렁한 것 같은데 오늘도 12시간 넘는 일과를 마친 셈이다. 먼 나라 이웃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조선학교


교장선생님과 함께


엄청난 긴 가지 - 맨 아래 가지가 큰 절집을 다 싸매고 있었습니다.


오오미조교회





102년 된 올겐 연주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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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10-11-23 10:34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국땅 오래된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100년 넘는 올갠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
생각만 해도 환상적인데요..
거기에 따뜻하고 향좋은  헤즐넛 커피 한잔만 있어 준다면...

완전 죽이지 않나요?....
어머 ..죄송합니다ㅠㅠ....또 언어 순화가 안되네..ㅋㅋ
양지 10-11-23 21:00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행운이지요.
신문에 난 기사를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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