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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4) 고린도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끝)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8-09-18 06:42 조회 : 220 추천 : 0

그리스(4) 고린도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8. 31(금) 그리스여행도 마지막 날이다. 부지런히 일어나 아테네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아레오파구스(Areopagus)산을 올랐다. 올라가는데 송지영 목사가 벌써 내려온다. 시간 때문이다. 아직 일출이 되지 않았다. 밥은 조금 늦게 먹고 시간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아테네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설득해서 아레오바고 언덕에 올랐다. 저 앞에 보이는 파르테논신전 옆으로 동이 터 온다. 조금 기다리니 장관이다. 연신 야호하며 멋진 일출과 함께 여기저기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환상적이다. 참 아름다운 광경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우리 팀에게 보여줄 요량이었다. 부지런히 내려와서 후다닥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고린도로 이동해서 사랑의 교회와 고린도유적을 보는 날이다. 1시간 쯤 달려가니 산불이 난 지역을 지나서 다시 2-30분 달려가니 고린도 운하가 나온다. 고린도 운하는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7㎞에 위치한다.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연결해주는 운하다. 네로황제로부터 2천년 동안 수차례 시도 끝에 1893년에 완공, 10. 28일에 개통했다고 써 있다. 총 길이 6.34㎞에 수심은 8m이며 폭이 25m로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이다. 고린도운하의 완공으로 아테네에서 이탈리아까지의 항로가 350km나 단축되었다고 한다. 보라는 것처럼 마침 배가 지나간다. 큰 배는 다니지 못하고 관광과 이동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이 운하 때문에 고린도는 반도에서 섬이 된 셈이다. 화장실도 가고 구경도 하고 잠시 쇼핑도 했다.


고린도에 대해서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쪽에 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말하며, 현재 고린도라고 하는 시는 신 고린도로 1858년과 1928년의 대지진 후에 세워졌다. 바울 당시에 고린도 성읍의 인구는 유대인이 많았고, 자유인이 약 25만 명, 노예가 수십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숫자상으로 고린도는 헬라의 중심 도시였다.


고린도는 천혜의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데 즉 서쪽에는 이오니아 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이온 항구를 품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에게해로 나갈 수 있는 겐그레아 항구를 품고 있었다.


아카야 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심한 빈부의 차이와 퇴폐적인 윤리 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2차여행시 1년 6개월 동안 전도했던 곳이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난 곳이며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팀사역을 한 곳이기도 하다. 제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3년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집필했고, 57년 경 그리이스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후서를 써 보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은 교우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목회적인 대답을 해 주기 위해 쓰여졌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들 간의 분쟁과 파벌 의식 이었다. 신자들 간에는 바울파, 아폴로파, 그리스도파 등이 조성 되었다. 이러한 파벌 의식이 만연되었다는 교회의 소식을 듣고 바울은 이 서간에서 그들이 전해 듣고 받아들인 복음을 상기 시키면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하였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말씀은 감동적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과 디도와 아볼로 등이 목회한 교회다. 바울은 후에 고린도에 머물며 로마서를 집필했다.


우리는 고린도시에서 현재 예배가 이루지고 있는 교회를 방문하자고 요청을 해서 한 교회를 찾아갔다. 마침 예배가 끝난 상태여서 향과 여운이 남아있었다. 교회의 종탑은 33m, 대부분의 교회들이 예수님의 33년을 상징하여 그렇게 한다고 한다. 여타의 그리스정교회처럼 교회 안에는 많은 그림이 있었고 둘러본 후에 우리는 묵상과 기도를 하고 나왔다.


고린도유적지


고대 고린도 유적지(Ancient Corinth)는 기원전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도시국가를 기원전 44년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가 재건한 로마시대의 유적이다. 고린도 시에서 약 8km 떨어진 아크로코린트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물론 지진에 의해 파괴되어 그다지 훌륭한 모습은 아니지만 과거 화려했던 코린트의 영광을 상상할 수 있다. 유적지 안에는 기원전 6세기경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아폴론 신전이 있었다.


건축 당시에는 38개의 원주로 된 신전이었으나 지금은 7개의 원주만이 남아 있다. 신전 남쪽에는 상점 등의 흔적이 있는 아고라가 있었으며, 유적지 입구 근처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시저 일족 의상 등 출토된 발굴품을 전시하고 있는 고린도박물관이 있어서 가보았다. 역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해설과 함께 둘러 본 후에 점심식사를 하고는 다시 아테네로 나왔다.


나오면서 우리는 고린도에서 남 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겐그리아 항구를 들렸다 왔다. 교통사고발생이 많은 곳이라 차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바울이 머리를 깍은 곳이고(행 18:18), 뵈뵈가 '겐그리아 교회'의 여집사로 봉사한 곳이기도 하다(롬 16:1-2). 뵈뵈는 A.D. 50-58 경까지 바울의 선교에 물질적인 지원과 조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A.D. 57년 경에는 바울이 서신을 로마에 전하는 귀중한 사명을 받고 그것을 로마 교인들에게 전달한 사명을 감당한 여인이었다.


아테네와 소크라테스 감옥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생지이며, 고전 문명의 많은 지적 · 예술적 사상이 비롯된 곳이다. 오래전부터 교통 중심지로 철도망을 통해 그리스 곳곳과 연결되며, 그리스의 주요항구인 피라이우스가 있다. 주요산업으로는 관광업·해운업·출판업 및 섬유·도자기·주류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그리스 인구의 절반인 5-600만이 이곳 아테네에 살며 한인은 200명 미만이라고 한다.


오후 3시 신전을 보기 위해 아레오파구스산에 오르며 세계 4대 성인의 한사람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무고한 죄명으로 갇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신 바위 감옥을 둘러보았다.


아레오바고 언덕


언덕을 오르는 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파르테논신전이 필로파포스 언덕에 평평한 바위가 나온다. 아레오파고스(Areopagus)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아레스​의 언덕, 마르스​의 언덕’이라는 곳이다. 초목​이 자라지 않는 이 석회암 봉우리​는 높이​가 113​미터​인데, 전설​에 의하면, 신​들 사이​의 기괴​한 살인 사건​에 관한 최초​의 공판​이 열렸던 곳으로 전쟁의 신 아레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그 바위​는 고대 아테네​의 사법 및 정치적​인 일​에서 중요시 되었다. 이곳​은 아테네 최초​의 법정으로 아레오파고스 법정, 단지 아레오파고스​라고 불리었다. 앞에서 말​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가 바로 이곳 아테네​의 법정​에서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도시​에서 섬기는 신​을 무시​하며 새로운 종교​를 실천”한다는, 단지 그런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곳이다. 변명의 기회를 주어 설득력 있게 되면 무죄선고를 했던 최초의 비마터(연설, 설교, 재판하던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법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우리 기독교에서는 사도 바울이 아덴시민들을 향해 설교했던 곳이기에 의미가 있다(행 17:16-34). 많은 신들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신을 알려준다며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의 부활을 설교했다. 아테네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바울이 선 곳에 서서 당시의 느낌을 가져보며 감개가 무량하다.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생지이며, 고전 문명의 많은 지적·예술적 사상이 시작된 곳이다. 아테네 아크로풀리스(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아테나이의 수호자로 여겨지던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건설되었다. 이 여신의 이름 아테나에서 이 도시 이름도 가져왔다.


파르테논 신전은 현존하는 고전기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도리스식 기둥 양식 발전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신전의 장식 조각도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여겨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의 민주정(民主政)의 오랜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1호이며 유네스코 지정 상징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그리스 문화부에서 복원 및 개축 계획을 시행중이라 가림막이 있어서 아쉬웠다.


여타 그리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파르테논 신전도 국가 금고로 쓰였으며, 특히 이곳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쓰였다. 기원후 6세기에 파르테논 신전은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기독교 교회로 쓰였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 1460년대 초에는 모스크로 쓰였고 첨탑이 건설되었다. 오랫동안 잘 유지되다가 1687년 9월 26일 파르테논 신전 안에 쌓아놓은 오스만 투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폭발하면서 신전과 그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1806년 엘긴의 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파르테논에 남은 일부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물은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으로 불리는데, 1816년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매각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엘긴 대리석 조각군을 다시 그리스로 반환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모쪼록 대단하다. 48개의 기둥과 엄청난 재료들을 25km 거리에서 굴려와서 말들로 하여금 끌어올려 건축했다고 한다. 배흘림기둥의 원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다고 설파했다(행 17:24). 그리스 국기가 게양된 전망대에서는 아테네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내려와서는 마지막 쇼핑을 하였고 귀빈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아크로폴리스 동쪽에 있는 근대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하였다.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렸던 곳으로 경기장의 정식명칭은 파나티나이콘 스타디움(Panathinaikon Stadion)이다. 기원전 경기장을 복원한 모습이라고 한다. 무려 5만 관중을 유치할 수 있는 규모였다.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1169년 동안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서 5일간 펼쳐졌다. 첫째 날에는 개회식을 열고, 제우스 신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둘째 날에는 약 700m 길이의 U자 트랙 경기장에서 5종 경기가 열렸으며 다음날부터는 그 외의 육상 경기가 펼쳐졌다. 마지막 다섯째 날에는 완전 무장을 한 남자 선수들의 중거리 경주가 벌어졌다. 올림픽 종목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리면서 시대에 맞게 바뀌게 된다.


그런데 마라톤은 왜 42.195km를 달릴까? 마라톤의 유래는 전설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 1만 명과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아테네 동북방으로부터 40.2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대전투를 벌였다. 아테네군은 격전 끝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도착해 수많은 시민들에게 “기뻐하라, 우리가 정복했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거리가 42.195km라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 거리로 정해졌다고 한다.


귀빈회관은 정말 가고 싶은 식당이다. 오늘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말 맛있는 저녁식사로 그리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하며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총무로 수고한 강봉구 목사가 대표로 수고한 분들에게 사례의 마음을 전하고 마무리 기도를 했다. 수고한 분들에 대한 박수 찬치도 했다. 가이드 윤윤심 선생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그리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주었다. 정말 유익하고 고마운 일정이었다.


밤 10:25 아테네 국제공항을 출발해서 1시간 30분 비행하여 이스탄불에 도착, 잠시 기다려서 터키 TK1844편으로 갈아타고 인천에 도착하니 9월 1일 오후 4:40 정도 되었다. 약 9시간 30분의 비행시간이다. 여러분들과 함께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어서 감사 감사하였다. 과묵하면서도 지혜롭고 발빠르게 대처하며 안내한 갈리리여행사 이현주 실장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래 기다려서 알찬 성지순례를 할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아테네의 일출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동이터오고











산불지역


고린도 운하


예쁘면 카메라로 다 산다.


이동중 촬영


이렇게 좁은 길을 버스가


첫번 들러 본 고린도교회























전면














이 종탑이 33m





여기서부터는 고린도박물관에서, 목이 없는 이유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머리만 새로 했답니다.














많은 유물들




















의학박물관











고린도유적지














뒤로 보이는 비마터와 아크로코린트산 - 바위산이며 아크로폴리스(신들의 언덕), 로마가 비잔틴시대에 요새로 사용했던 곳이며 중세시대에 성매매가 성행했던 곳








식당에서





건너다 보이는 교회


위령소(림니오) - 교통사고사망지 등에 세움


새로지은 사랑의교회라는데 이동중 촬영


여기서부터는 아테네 - 아주 작은 교회


철학자 소크라테스 감옥 앞에서


감옥 안





한번 더


이 길도 유네스코





올려다보이는 신전


다시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울이 섰던 곳


아레오바고 언덕 - 신전쪽에서 촬영


파르테논신전

















신전 양쪽 지붕끝부분





아래전망








아쉬워서 한 번 더








나오면서 아쉬어서 양 신전을 담았습니다.


음악당 - 지금도 공연합니다.


음악당 입구





가로수가 뽕나무


뽕나무가 잘 자라서 그늘이 되며 매년 잘라준답니다.


근대올림픽 경기장


귀빈식당에서


거리





착륙시 인천공항근처에서


인천대교


다시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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