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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선교사 아내의 이야기
글쓴이 : 이상호 날짜 : 03-06-18 06:39 조회 : 821
선교사 아내의 이야기 (03년 6월 선교편지)

어느새 안식년으로 이곳에 온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 선교사 사모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곳에서 적응하려면 1년이 걸린다고, 그러나 나는 1년이 다 되어
가는대도 적응하기가 힘이 든다. 왜 그럴까!
선교사로 출발한지 어언 12년이 넘는 세월 속에 30대의 젊었던 모습은 간 곳
없고 흰머리와 주름살과 지친 육체뿐인 것 같다. 왜 한국의 내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멀리하고 선교사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문화 충격과 언어 충격, 때로는
모욕과 아픔을 감수하며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가! 그리고 왜 안식년의 쉬어야 할
시기에 쉬기는 커녕 더 힘들게 사역을 해야 하는지! 하지만 난 이 환경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아울러 누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8년의 목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풋풋한 사랑을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들 보고 싶은 얼굴들!
목사님이 갑자기 선교의 사명을 느끼고 선교사로 떠날 것을 선포 할 때 모두들
반대했지만 주님의 부름에 순종 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과 성도들! 필리핀에서
10개월의 훈련을 받고 우리는 홍콩으로 출발했다. 그 당시 중국으로 가족이 직접
들어 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되어 가족은 홍콩에 머물며 선교사님만 중국에 들어가
언어를 배우고 가족만 남아 생활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세를
줄이기 위해 집을 학교에서 가장 먼 변두리에 잡고 아이들을 학비가 제일 싼
학교에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전철을 3번씩 갈아타고 1시간 30분 거리의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때 아이들이 국민학교 1학년과 3학년의 어린 나이여서 집에 돌아
올 때까지 나는 늘 마음 졸이며 지냈던 시간들! 늘 중국을 그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2년이 지난 후 기차를 40시간을 타고 도착한 북경, 우리가 처음 거처 해야
할 집은 단칸 방에 부엌은 기름에 쩔고 쩔어 도저히 짐을 풀고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집이었다. 그때의 그 난감했던 마음! 그러다가 이사하여 중국 농촌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교육시킨다고 집으로 데려와 두 주간씩, 그러다가 3-4개월씩
20여명을 합숙시키며 공동생활을 하고 목욕을 제대로 못한 그들에게서 이가 올라
고생 하던 일! 어느 날 제자훈련을 시키던 그 시기에 가스통에 불이 붙어
폭발해서 훈련생들이 산산히 흩어져서 대피하던 날 앞이 캄캄하고 이제 끝났구나
싶었던 아찔했던 순간들! 경찰이 한밤중에 찾아와서 여권과 가족상황을 조사하던
일! 제자양육과 아울러 문서 선교까지 하던 배짱 좋은 우리 선교사님은 겁 없이
성경책을 수십 가방씩 (때로는 1톤씩) 나르다 현장에서 잡혀 조사를 받기에 몇
일씩 행방 불명되어 마침내 대사관에 찾아가 신분의 확인을 위해서 호소하던 일,
나 역시 경찰의 미행으로 모든 사람과 두절된 상황에서 금식하며 애태우고 경찰이
찾아올까 두려워서 하루종일 밖에서 맴돌다 밤늦게 들어가던 일, 어느 날 갑자기
9명의 경찰이 들이닥처 집안에 있는 모든 자료를 몰수 해가고 그것도 부족하여 몇
시간이 못되어 밤에 다시 들이닥치는 경찰의 목소리를 듣고 겁에 질린 나는 그
당시 집에 같이 있던 중국인 자매 (쟈오메이)를 베란다에 앉혀놓고 텔레비젼
박스를 씌워놓았는데 그들은 또 다시 장장 2시간 가까이 집을 뒤지고 있었으니
나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렇게 경찰의 조사를 받는 것을 알고 주인은 날마다
나가라는 데 갈 곳은 없고 경찰은 절대로 이사를 못하게 하고 그런 와중에서
어느날 주인이 집을 수리한다고 헤머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짐을 방 한
쪽에 몰아넣고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여 어느 학교의 기숙사를 찾았다. 우리는
그곳에 임시 기거하며 화장실에서 몇 달간 밥을 해먹다 끝내는 중국에서 쫓겨나고
10년간 입국 정지를 당했다. 오랜 세월 속에 거의 잊혀진 일 인데 다시 그때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려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린 다시 대만으로 가서 5년간을 사역 하면서 그리스도의 훈훈한 사랑을
받았다. 내가 대만을 많이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안식년으로 미국에 와 보니 비싼 집세에 도저히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 할 수
가 없는 형편에 지금의 비젼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 해야만 한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수많은 신 이민자들을 위해 성경을 가르치고, 법정에 가서 증인도 서고,
그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하기 때문에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도 없었고 몸이
지칠대로 지친 나에게 집을 공개하여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 이었다. 거기다 집을 얻은 것이 바퀴벌레가 수 없이 나왔다. 그래서 이사를
하고도 짐을 풀지도 못하고 밤이면 정신없이 나오는 이 바귀벌레에 몸살을
알다가 다시 쥐벼룩이 날마다 물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번 물리면 두
주간은 가려워 괴로움을 당한다. 이 벼룩은 개나 고양이가 옮긴다고 하는데 특히
미국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또한 음식을 먹고 카페트에
흘리면 얼룩이지고 쉽게 닦을 수도 없고 빨래를 날마다 공동세탁기로 가지고 나가
하는 것이 습관이 안되어 적응하기에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매주 모이는 소그룹 모임에 사람이 많으면 30-40명이 되니 앉을 자리가 없고,
이제 18살과 16살 짜리 딸과 아들을 한방에다 재우는 미국 법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 왔다. 그러다 주님은 윤집사님과 김집사님 등을
감동하셔서 그분들의 도움으로 사역에 필요한 지금의 방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목요집회를 하려니 시끄러워서 이웃에 방해가 안 되는 곳 이여야 하고 지금의
Monterey Park에서 떠나기가 힘든 것은 중국 신이민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저들을 픽업해 데려오고 데려다 주어야 하는 일 때문에 이곳에서 방을
얻으려니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아파트는 좀 있는데 이웃에 시끄럽기 때문에
단독주택을 얻으려니 단독주택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집을 얻게
되었는데 거실은 옛날 집으로 넓은데 너무 지저분하고 페인트도 안 해주고
카페트도 안 갈아주고 그래서 포기하려 했지만 선교회에서 페인트와 내부장식을
해준다고 약속했고, 선교회의 형제들과 함께 페인트를 직접 사다 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다보니 바퀴벌레가 수 없이 나오고 화장실 청소만 하루를
했다. 이런 식으로 이 집을 들어와야 하나 생각하니 좀 속이 상해도 주님의 일을
위해선 우리가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주의 종에게 생을 같이 하기로
하면서부터 여자가 누려야 할 세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고, 더욱이
선교사로 나오면서부터는 늘 슬프고 마음이 많이도 아팠기에 이처럼 쇠약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넓은 마당이 마음에 들었는데 (주차하기 좋은) 페인트를 칠 해놓고 나니 주인이
마당을 주차장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준다고 으름장을 했다. 힘들게
페인트와 집수리를 했으니 포기 할 수도 없고 정말 기가 막힌데 기도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은혜로 집 앞에만 주차를 안 하기로 하였다. 집수리를
시작을 한지 10일 안에 이사하라니 바퀴벌레가 계속 나오는데도 할 수 없이
들어갔다. 아마 약을 계속 쓰면 두 세 달은 걸려야 없어질 것 같다. 이렇게
힘들게 이사를 하고 선교회 형제 자매들을 초청하고 이웃을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날 안디옥 교회와 00선교회에서 함께 축하해주셨고, 중국
노동자들과의 교제를 위해서 BBQ와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 주셔서 넓은 마당에서
교제하며 음식을 나누었고, 이어서 중국의 몽고 춤과 신장 춤을 감상하였는데
너무 아름답고 좋은 시간이었다. 이어서 말씀을 듣고 반을 분반해서 소그룹으로
공부를 하고 저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고향을 떠나 돈을 벌겠다고 처자식을 버리고 나와서 떠도는 저들은 늘 외롭고
고향이 생각나기에 오늘과 같은 이런 시간들을 좋아한다. 저들 중에 5-6년이
되었는데 가족과 이산 되어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눈물 흘리는 많이 있다. 요즘은
SARS병 때문에 중국에서 넘어오는 이들이 거의 없고 해서 30-40명을 예상했는데
60명이 넘게 와서 함께 참여해서 입주 감사예배를 드리고 그 중에 바로 옆집
아줌마가 참석하여 계속 나오고 있어 감사를 드린다. 이제 바라기는 이 집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믿음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지길 간절히 바라며, 저들의 간증
가운데 80-90%가 신분 해결을 위해 모임에 참석했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사역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나의 바람은 어서 속히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여 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며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부족한
저희들의 사역과 가정을 위해서 기억 날 때마다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

200, 6 , 17

김경환, 고태영 (세별/동민) 선교사 올림
신주소: 206 N MOORE AVE MONTEREY PARK 91754 CA U. S. A
전화: 626-570-8257 / 626-353-6459
집회: 매주 목요일 저녁 7:00-9:30


* 오늘은 이제 막 메일로 온 고태영선교사의 편지를 나누어 봅니다.
웃자고 한 유모어판에 가슴 뭉클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넉넉한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김경환 고태영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심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집회는 오늘 밤으로 끝납니다.
많은 참석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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