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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Sweet Home' -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
글쓴이 : 이상호목사 날짜 : 19-05-24 06:55 조회 : 27

'Home Sweet Home' -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


미국 애국가 성조기보다 미국인이 애창한 노래는 아마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의 '홈 스위트 홈’이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이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전투를 하였을 때 이 노래가 관련됐던 이야기가 있다.


이 전투에서 양쪽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양쪽의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 날밤 이변이 일어났다. 북군 군악대는 아주 특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로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 그 멜로디는 바람결의 새털처럼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리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군인들은 사무친 그리움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멜로디는 강 건너편에 있던 남부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다. 남부군 군악대도 덩달아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남부군도 다함께 합창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 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며 환호했다. 이 장면을 취재했던 프랭크 막심은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다들 미쳤다'라고. 노래 한곡 때문에 전쟁은 사라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던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나의 집>의 멜로디는 서로의 적대감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로 시작되는 노래이다.


노랫말을 지은 ‘존 하워드 페인’(1791.6.9 ~ 1852.4.10)은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였는데... 그는 열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존 하워드 페인은 아버지가 웅변 선생님이었던 덕분에 그 특기를 이어받아  극작가 겸 배우가 되었다. 그는 열세 살 되던 해에 부모와 사별한 이후부터는, 그에게는 평생 집이 없었다. 다행히 배우가 된 그는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무대에 진출한 연예인이 되기도 했다.


헨리 비숍이 곡을 붙인 그의 이 노래는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The Maid of Milan)에서 불려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래가 되었다.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만 한 곳은 없다"고 한 이 노래는 그가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같이 살든 그 집외에는 나의 집이라고는 평생 가진 적이 없었던 그였고,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떠돌았던 게 그의 한평생이다 보니...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은, 프랑스 파리에서 동전 한 푼 없이 떠돌며 사는 신세다보니 더 그 고향집이 그립고 간절해져서, 이 노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1842년 튀니스 주재 미국 영사관에서 10년간 지내며 거기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한 해 전에 친구에게, 

“나는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하도록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해주었지만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그 맛을 모르고 살았는데 ... 앞으로도 그 맛을 보지 못하고 말 것 같소.”라고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보냈고, 이 사연이, 그가 사망 31년이 지나 미국 정부에 전해져 미국정부는 군함을 보내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운구했다.


유해가 도착하던 이날 뉴욕 항은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을 비롯, 많은 저명인사와 수많은 시민들과  65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홈스위트 홈'을 연주하면서 죽어서야 그의 부모와 같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맞았고, 그를 열광하며  환호하던 시민들은 그의 유해가 내려오자 모두 눈시울을 젖었다. 


그의 묘는 워싱톤 근교 더 오크 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죽어서야 집을 구한 그의 묘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미국을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신 존 하워드 페인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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